‘젤리피쉬’ 공연 포스터
장애예술에서 출발한 공연이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양대 권위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사장 방귀희, 이하 장문원)이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대표 석재원)과 공동 제작한 연극 ‘젤리피쉬’(연출 민새롬)가 지난 5월 8일(금)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단체·작품·사람의 경계 없이 가장 뛰어난 연극적 성과를 낸 후보에게 수여되는 연극 부문 최고상이다.
이번 수상은 지난 1월 제6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에 이은 두 번째 트로피다. 한국 연극의 양대 권위상을 같은 시즌에 동일 작품으로 석권한 사례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장애예술 기반의 작품이라는 점은 한국 동시대 연극사의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특히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은 폐지된 지 18년 만인 2020년에 부활해 큰 의미가 있는 상으로 장애예술 작품이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젤리피쉬’는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27세 여성 ‘켈리’가 사랑·관계·자립을 통해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다운증후군 당사자 배우 백지윤이 켈리 역을 맡아 2시간이 넘는 무대를 이끌고, 저신장 장애인 배우 김범진이 도미닉 역을 연기한다. 그동안 한국 연극 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배역과 배우의 결합이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
작품은 2024년 쇼케이스를 거쳐 2025년 3월 모두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뒤, 같은 해 9월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에 선정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다시 올랐다. 영국 부시 시어터(2018), 내셔널시어터(2019) 등 해외 공연에서 호평받은 원작이지만, 모두예술극장은 자체 제작을 통해 국내 정서에 맞게 재해석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동시에 얻어왔다.
양대 시상식의 평가도 이례적이었다. 백상 연극부문 심사위원단은 예술적 수월성과 대중적 확산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심사했다며, 올해의 결과는 연극계의 지금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총평했다.
앞서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단은 ‘젤리피쉬’를 두고 관객들이 강요받기보다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수작이며, 공존과 인간의 선함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고, 연출과 배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라 평한 바 있다.
장애·비장애의 경계나 사회적 편견이라는 통상적인 메시지에 기대지 않고,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동시대 연극으로서의 작품성과 대중성에 도전한 점을 높이 샀다는 점이 두 시상식 평가의 공통된 메시지다. ‘젤리피쉬’는 장애를 익숙한 극복 서사나 재현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가족임에도 타협하기 힘든 대립이 생겨나며 공존을 위해서 분투하는 개인들의 삶으로 그려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인간 존재 가치와 소통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평가를 꾸준히 받아왔다.
이번 수상은 모두예술극장이 2023년 10월 개관 이후 2년여 만에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모두예술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으로, 장애예술인의 창작·육성·교류와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무대 환경 구축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지난 1월 제62회 동아연극상에 이어 백상예술대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작품 한 편의 성취를 넘어선다. 장애예술 인프라가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귀희 장문원 이사장은 “장애예술은 인간의 소망과 사회적 응집력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예술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며 “앞으로도 모두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장애예술의 새로운 흐름과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상식 현장에서 배우 백지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원작자 벤 웨더릴과 동료 창작진 그리고 공연을 관람해 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젤리피쉬’는 오는 9월 부산 영화의전당을 시작으로, 모두예술극장이 제작한 다른 장애예술 작품들과 함께 전국 지역 문예회관 무대에 차례로 오를 예정이다. 장문원이 지난 1월 진행한 장애예술 작품 상연 희망 지역 문예회관 공모에는 11개 문예회관이 최종 선정됐다. 서울 모두예술극장에서 출발해 전국 지역 문예회관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장애예술이 한정된 무대를 벗어나 한국 공연예술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의 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곽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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